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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물

참여적 의사결정을 통한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 방안

  • No.250
  • 작성일 2022.07.11
  • 조회수 36039
  • 권영란 연구원
  • 염철호 선임연구위원
  • 손은신 부연구위원

* 이 글은 권영란 외. (2021).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을 위한 의사결정체계 기초 연구.
건축공간연구원. 중 일부 내용을 정리하여 작성함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다양한 주체의 참여적인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참여적 의사결정의 궁극적인 방향은 해당 유산의 무조건적인 보전·활용이 아니라, 네거티브 헤리티지가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 보전·활용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논의에 대하여 확대된 참여주체와 함께 고민하는 숙의적 의사결정과정을 도입하고 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에 대한 갈등 대두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란 ‘부정적인 집합기억이 저장된 갈등의 장소(Meskell, 2002, p.558)’ 로 ‘현재 시점에서 기념하기 어려운 장소’를 의미하며, 대중들에게 부정적이고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불편 문화유산(difficult heritage)’으로 불리기도 한다(이현경, 2018).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나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세네갈의 고레섬과 같은 네거티브 헤리티지는 후세에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보전된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동시대적 합의에 이르지 못해 문화적으로 복원될 수 없거나 국민적 의식에 동화될 수 없는 경우, 대부분 철거되는 사례가 많다(김미진, 2018, pp.5-6).

 

 

국내의 경우, 일제강점기 유산에 대한 보존-철거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보전·활용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95년 구 조선총독부 철거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에 대하여 ‘철거되어야 할 일제의 잔재(殘滓)인가, 후세의 교훈을 위해 남기고 보전해야 할 문화유산인가’라는 보전과 철거를 둘러싼 첨예한 의견 대립이 나타난 대표적 사례이자, 식민지 건축물을 유산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후 2001년 3월 근대문화유산을 보호할 수 있는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되면서 건축유산의 시대적 범위가 근현대 시기까지 확대되었고, 이에 일제강점기를 비롯하여 한국전쟁, 제주 4·3 사건, 민주화운동 및 그 외 재난·재해·참사 등이 발생한 참혹한 역사의 현장과 관련된 건축물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식되고 논의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처럼 국내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보전·활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 및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네거티브 헤리티지와 관련된 실제 사회적 논의의 대부분은 해당 유산의 보존·철거 양론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보존이냐, 철거냐’로 양분된 네거티브 헤리티지 찬반 갈등은 유산의 역사적·사회적 가치나 피해자에 대한 고려, 부정적인 감정의 해소 방법과 보전·활용 방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정책 사업 추진 방향 설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네거티브 헤리티지는 참혹한 역사의 현장으로, 오늘날 대중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유산이기 때문에 기존 포지티브 헤리티지(positive heritage) 보전·활용 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하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한계를 재검토해야 하는 시점이다.

 

네거티브 헤리티지 특징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 과정에서 왜 갈등이 발생하며, 이 갈등은 포지티브 헤리티지와 어떻게 다른가? 그 이유는 다음의 네 가지 특징으로 설명된다.

첫째, 네거티브 헤리티지는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발생한 역사적 비극과 관련이 깊은 건축유산이다. 네거티브 헤리티지는 주로 대중들에게 부정적인 기억 또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건축유산으로, 유산과 관련된 역사적 비극에 대한 대중들의 ‘경험,’ ‘감정,’ 또는 ‘기억’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국내 네거티브 헤리티지 사례는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식민통치·수탈·강제노역과 관련된 유산이며, 그 외에는 한국전쟁,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건축물이다. 따라서 역사적 가치가 높고, 보존 가치가 크며, 희소성이 클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는 전통적인 문화재의 가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여 평가하기는 어렵다.

둘째, 네거티브 헤리티지가 가까운 시기에 발생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 중심의 건축유산이라는 점은 곧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건 당사자가 동시대에 존재하고 있거나, 직간접적으로 사건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대중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네거티브 헤리티지를 보전·활용하는 과정에서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셋째, 네거티브 헤리티지와 관련된 사건 대부분이 국가적·정치적·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사건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네거티브 헤리티지는 주체에 따라 여러 갈래로 가치평가가 가능해진다. 같은 맥락에서 유네스코는 국제 분쟁의 소지가 있는 유산의 경우 ‘선 갈등 해소, 후 등재 추진’이라는 원칙을 세웠다(강동진 외, 2017, p.57). 일례로 국내에서는 군함도로 잘 알려진 일본 하시마의 경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23개소 중 하나로, 일본의 산업화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강제 징용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명시하지 않아 역사 왜곡의 논란 대상이 되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명시하겠다는 조건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나 현재까지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어 역사적 진실 규명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네거티브 헤리티지는 역사적 비극과 불편한 기억과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가치가 있는 유산으로서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강동진 외(2017, p.57)에 따르면,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네거티브 헤리티지 사례는 후대에 대한 ‘교훈’을 제공하는 의미1)가 크다. 네거티브 헤리티지가 보전·활용되는 경우 전쟁, 식민 지배, 학살, 재난, 재해와 같이 유산과 관련된 부정적인 사건과 갈등 요소들이 반성, 희망, 평화, 민주주의, 애도와 추모 등의 가치 개념으로 치환되는 경향을 보인다.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양상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네 가지 특징은 기존 문화재(포지티브 헤리티지)와 명백한 차이점을 가진다. 따라서 기존의 포지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 의사결정 방식을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 의사결정 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유효한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국내 대표적인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 사례에서 나타나는 갈등 양상을 바탕으로 기존 의사결정체계의 문제점을 검토하였다.

가장 먼저 유산에 대한 조사, 고증 또는 해석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 특히 네거티브 헤리티지와 관련된 참혹한 역사적 사건과 사건 관계자의 의견, 해당 유산의 가치평가를 위한 연구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보전·활용 단계를 논의하는 것은 오히려 유산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통영해저터널(2005년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의 경우 당초 문화재청에서 ‘통영태합굴(太閤堀) 해저도로’라는 명칭으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경칭인 ‘태합’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문화재 명칭으로 등록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학계 전문가와 일반 국민의 지적이 있었다. 문화재청은 이 지적을 받아들여, 문화재의 명칭을 ‘통영해저터널’로 변경한 후 등록문화재로 등록하였다(문화재청, 2005).

 

 

다음으로,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여 사회 공동체 간 합의 형성에 실패한 경우 보전·활용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건축물 중 일제 수탈, 민족성 말살을 위해 조성된 시설, 친일파 소유 건축물, 그 외 적산가옥 등은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산 박정희 별장과 같이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가치에 대한 지역 공동체 간 의견이 불일치하는 사례도 있다. 특히 대국민적 반감에 대한 공감대 형성 과정이 필요한 일제강점기 유산과 달리, 한국전쟁기나 민주화운동 시기의 유산의 경우 특정 인물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가 양분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보전·활용 사업이 정책 의사 결정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경우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보전·활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해당 유산과 관계있는 역사적 비극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건 당사자의 의견을 충실히 청취하지 않은 경우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주 4·3사건의 피해자 유족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추진된 제주 이승만 별장(2004년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이 있다. 제주시는 이승만 별장 종합정비계획 수립 및 활용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제주 4·3사건 유족 및 관련 전문가의 참여를 배제한 채 별장의 소유주인 ㈜제주축산개발과 계획 내용을 일방적으로 논의, ‘이승만 기념관’으로 활용 용도를 결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주 4·3사건 유족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일어났고, 제주도의회의 결정으로 별장 보수 지방비 전액이 삭감되었다.

 

참여적 의사결정을 통한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 필요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다양한 주체의 참여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존 문화재 보전·활용 의사결정체계에서는 정책 관계자와 일부 전문가만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그러나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보전·활용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정책 관계자와 전문가 이외에도 사건 당사자와 유족들, 불편한 역사적 기억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하는 대중들과 관련 시민단체, 지역주민, 관계 전문가 등 부정적이고 불편한 기억과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여러 대상으로 의사결정 참여주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때 각 의사결정의 참여자는 각각의 유산과 관련된 사건, 인물,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의 의사결정 시 참여적 의사결정방안 도입을 위해, 먼저 참여주체의 범위를 조사하여 설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네거티브 헤리티지는 건축물 자체의 보전 가치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기억을 전승하고 후세에 교훈을 전달하는 미래 지향적 가치가 중요한 유산이다. 따라서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보전·활용을 위해서는 유산의 건축적·역사적·사회적 가치 등 다양한 측면에 대해 입체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네거티브 헤리티지를 보전·활용함으로써 미래 세대에 전달하고자 하는 유산의 가치와 교훈이 무엇인지 발굴하는 과정은 확대된 의사결정주체와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 연구에서 제안하는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을 위한 참여적 의사결정의 궁극적인 방향은 해당 유산의 무조건적인 보전·활용이 아니라, 네거티브 헤리티지가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 보전·활용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논의에 대하여 확대된 참여주체와 함께 고민하는 숙의적 의사결정과정을 도입하고 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참여적 의사결정이라는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 기본방향을 제안하는 기초연구로서, 이를 바탕으로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을 위한 의사결정체계 연구’라는 후속연구가 올해 진행 중이다. 후속연구를 통해 구체적인 의사결정체계와 갈등관리 방향, 참여적 의사결정체계 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제와 제도개선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1) 네거티브 헤리티지는 세계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이유는 “인류에게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전달하고, “비록 불행한 역사이지만 국제적인 화해와 평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강동진 외, 2017, p.57)

 

  • 강동진, 배연한. (2017). 근대관련 세계유산의 등재 경향 분석. 國土計劃, 52(5). 47-67.
  • 권영란, 염철호. (2021).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을 위한 의사결정체계 기초 연구. 건축공간연구원.
  • 김미진. (2018). 일제강점기의 ‘부정적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의 변화: 충남금융조합연합회 회관을 사례로. 공주대학교 문화유산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김용덕. (2011). 이승만 기념관 건립 ‘논란’…4·3단체 “납득 못해”. 뉴시스. 3월 2일 기사.
  • 문화재청. (2005). 「통영해저터널」 문화재 등록예고 명칭과 관련하여. 8월 11일 보도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main/?v=1655277138488
  • 민주인권기념관 홈페이지. 기념관 소개 페이지. https://dhrm.or.kr/intro
  • 세계일보. (2020). [단독] 유네스코 “日 군함도 세계문화유산 적절성 다룰 것”. 6월 24일 기사.
  • 유네스코와 유산 홈페이지. https://heritage.unesco.or.kr/
  • 이현경. (2018). ‘불편문화유산(difficult heritage)’의 개념 및 역할에 대한 고찰. 도시연구, 20. 163-192.
  • 허호준. (2011). 제주 이승만 별장 보수 ‘제동’. 한겨레. 12월 14일 기사.
  • Meskell, L. (2002). Negative Heritage and Past Mastering in Archaeology. Anthropological Quarterly, 75(3), 557-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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